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개인적 생각

• 15개
• 후배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생각

1. 모든 걸 다 알아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출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돈은 잘 모르지만 연구에서도 비슷한듯합니다.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라, 이런 말도 있고요. 저도 사실 첫 논문 쓸 때 kd tree 원리 모르고 썼답니다. In/out 만 알고 갖다썼지만 아무튼 논문을 쓰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2. 하지만 기술부채는 결국 갚아야 합니다. 지나보니 그렇더라고요. kd tree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까요. kd tree 와 hash의 장단점은 어떻게 다를까요. QR decomposition 의 time cost complexity 는 어떻게 될까요. Underdeterminant system 을 풀면 어떤 에러가 나고 왜 그러한 에러 메시지가 출력될까요. Reprojection error 의 jacobian은 어떻게 구할까요. Symbolic diff 와 Auto-diff 는 어떻게 다를까요. 최적화는 Ceres가 알아서 다 해주던데 는 결코 좋은 답변이 아닙니다. 시간이 된다면 라이브러리 코드도 다 까보세요. 그리고 numerical optimization 에 대한 이론 책도 한번 천천히 읽어보세요. 저는 ChatGPT 시대에도 여전히 잘 쓰여진 textbook의 호흡을 전체적으로 따라가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당장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선형성장을 목표로 하세요. 한 주기동안에는 하나를, 일관된 속도로, 지치지 않게. 예를 들어 이번 1년은 이걸 잘하고, 그 다음 1년은 저걸 잘 해지도록 해야겠어 와 같은 계획을 세우세요. 대신 경력이 쌓일수록 선형성장의 기울기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log-like or sublinear 성장인 것 같아 좌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현 시점에서의 기울기의 norm이 작기 때문이다, 라고 정신승리 하세요. 느려보여도 암튼 linear 하게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Quadratic 을 목표로 하는 것도 그렇게 유익하진 않습니다. 금방 지치기 쉽거든요. 대신 linear 하게 span하세요. 그럼 rank가 올라간답니다 깔깔
4. 옆 친구의 성장속도에 눈과 귀를 너무 기울이지 마세요. 높은 기준과 높은 실력을 가진 동료들이 연구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눈과 귀를 닫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몇년차에 논문을 몇개 썼고, 이런 가십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게 동기부여가 되든 안되든 톡식한 건 톡식한 겁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학계에 남든 산업계로 가든 ‘졸업시점’의 실력으로 평가 받는 듯합니다. 기술부채를 잘 갚고있는지, 진짜 임팩트를 한 번이라도 발생시킨적이 있었는지, 연구자 커뮤니티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졸업 전에만 탄탄하게 준비가 되면 됩니다. 2-6년의 시간 동안 단시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졸업 전에만 발생하면 충분한) 대폭발의 순간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워보세요. 그리고 숫자가 아니라 진짜 실력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세요.
5. 동기들 간의 시샘/경쟁/의식은 톡식하지만 선배 혹은 대가에 대한 동경은 나름 효과적이고 효율적입니다. I am a big fan of yours … 라고 할만한 연구자들을 선정해보세요. 나도 그들 처럼 되고싶어, 라는 속세적 욕심은 그래도 경력 초기에 큰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의 스펙과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노력과 철학을 동경하세요. 그 논문의 알찬 품질을 존경하고 동경하세요. 논문을 나의 작업물, 내가 음악가라면 마치 나의 앨범이라고 생각하세요. 부끄러운 작업물을 내놓을 수는 없죠.
6. 경력 초기에는 대작을 노리기 보다는 ‘리젝 줄 이유를 찾기 어려운’ 논문을 작성하려고 해보세요. 이를 위해서 좋은 논문의 모양을 파악하세요. 취미생활은 흥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소통하기 위해서는 형식이 먼저입니다. 형식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억셉 줄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좋은’ 논문의 모양을 많이 파악하세요. 좋은 학회/저널의 최근 수년간 논문 수천편의 이미지를 눈으로 다 찍으세요. 그리고 그 시기를 잘 넘기면 (== 논문 작성의 기술에 숙달되면), 아래 그림을 기억하세요.

   

7. 즉, 임팩트의 원리를 기억하세요. 파레토의 법칙. 80%의 성과가 20%의 논문에 의해 발생합니다. 자기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연구부정을 저지르지 마라 라는 진부한 말은 아닙니다. 사실은 낮은 수준인 자기 자신의 작업물에 관대해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짜성취감 이라고 부릅니다. 가짜 성취감을 멀리하세요. 한 번 성취한 난이도의 수준을 두 번 성취하지 마세요. Aim High 하고, 메타인지력을 높이기 위해 앞의 지침(탑티어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들의 외형을 수천편 관찰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세요.
8. 그리고 노벨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메소드 노벨티와 프라블럼 노벨티. 연구자라면 프라블럼 노벨티를 지향하세요. 테이블은 인크레멘탈하게 발전하지만, 데모는 문샷으로 발전합니다. 학계의 연구자라면 1% 개선이 아니라 제로투원에 시간을 더 쏟으세요.
9. 프라블럼 노벨티의 진화된 형태가 프라블럼 오너십입니다. 정말 스스로 풀고싶은 문제를 품으세요. 그리고 동료를 모으세요. 그들이 함께 진전하는데 필요한 초기결과와 데이터와 힌트들 나의 노하우들을 모두 나누세요. 이렇게 까지 하려니까 너무 귀찮다 싶을정도로 떠먹여 줘 보세요. 모두 나누어야 함께 큽니다.

   

10.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세요. 세상은 nonlinear 하고 사람이든 센서든 인지(perception)에는 outlier 와 noise가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모든 데이터에는 outlier가 있고 따라서 normal equation을 풀 때는 over-determinant system (state 에 비해 많은 수의 measurement) 을 푸는 게 기본입니다. 이런 글도 하나만 읽지 마세요. 시대 차이가 있고 세대차이가 있어서 선대의 경험들이 유효하지 않을때가 많은 듯합니다. 주어진 제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세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세요 를 다섯글자로 줄이면 지적성실함 입니다. ‘싱크 어게인’ 책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자기 마음을 바꾸는 것이 전도사 모드에서는 도덕적인 허약함을 드러내는 표시이지만 과학자 모드에서는 지적으로 성실하다는 표시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설득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검사 모드에서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과학자 모드에서는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지적으로 성실해야, 프라블럼 노벨티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11.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감각은 꽤 중요한듯합니다. 한 가지 논문은 단 한 가지 컨셉을 지녀야 합니다. 두 가지 컨셉이 있어서 아주 좋은 논문이 될거라고요? 그러면 그 논문은 쪼개서 두 편으로 내는 게 낫습니다. 우리가 불닭볶음면에서 기대하는 게 딱 하나이듯이요. 리뷰어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기억되는 단 하나의 컨셉이 있고 리젝줄이유가 없다면 억셉될 것입니다. 그리고 논문에서 그 컨셉을 정말 지겹도록 계속 얘기해야합니다. 리뷰어들은 나보다 내 논문을 잘 모르니까 핵심 컨셉을 금방 잊어버리거든요. 리뷰어는 고객입니다. 고객은 시간이 없고요. 고객 앞에는 똑같아 보이는 제품 10개가 진열되어 있어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리뷰어가 내 논문을 잘 안읽어서 떨어졌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딜레이된 시간은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결국 아쉬운 건 나입니다. 내 연구력이 모자랐다고 자괴감에 빠지자는 게 아닙니다. 까보면 라이팅 문제라는 건, 영어실력보다도 브랜딩과 마케팅적인 감각에 관한 일인 것 같더라고요.
12. 제목짓기 게임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논문이 다 써져있다고 상상해보는 겁니다. 간단한 가설이 있다면, 코딩을 하나도 하지 않았더라도, 제목을 먼저 그럴듯하게 지어보세요. 시간이 많이 아껴질 겁니다. 왜냐하면 시작에서 너무 작은 것을 공략하는 논문은 아무리 노력해도 탑티어에 가기 힘들수도 있거든요. 사고실험 이전에, 사고작성, 이랄까, 그런 상상을 먼저 해봅시다. 영화에서는 이걸 ‘로그라인’ 이라고 표현하는 거 같아요.
13. 학회에서 외국인과 영어로 잘 토의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학회에서 외국인과 영어로 토의하는 것입니다. ‘영어말하기잘하는 법’ 책을 읽거나 화상영어를 하는게 아니고요. 그래서 이 글조차도 사실은 결국엔 크게 도움이 되지않을 거에요. 연구를 바로 시작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연구잘하는법 글을 읽는게 아니라 연구를 해야합니다. 블로그에 연구동향을 정리하고, 최신 논문을 요약하고, 튜토리얼 코드를 돌려보는 것은 모두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Easy come Easy go 라는 말이 있죠. 남의 코드 돌려보는 건 30분, 블로그에 요약 정리하는 건 3시간, 내 논문을 직접 써내는 건 6개월. 어떤 게 가장 많이 남을까요. 우리는 이 시기에는 농산물 리뷰가 아니라 농사를 직접 지어야 해요. 농사는 시간이 걸리고요.
14. 좋은 디렉터는 어떠해야 할까요. 어떤 디렉터를 만나야 위의 약속들을 systemical하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착하고, 성실하고, … 다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 사람의 디렉팅을 받으면 성공경험을 취득해나갈 수 있겠다, 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렉터는 디렉티(directee) 의 개인적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돈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는) mission이나 vision일수도 있고요. 조직의 Mission 을 공감하고 충족하고 기여할 때 얻는 희열도 개인적 이익 실현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디렉터는 1) 디렉티(directee)의 현재 수준에 맞는 목표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화된 경력 단계에 맞는 난이도 제시), 2)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며 (환경과 시스템 구축, 노하우 전수), 3) 그 목표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성취한 수준 재탕 X) 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4) 그 전 과정을 좋은 인성으로 집도할 수 있어야 하고요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 조성). 그리고 간과하기 쉬운게 5) 디렉터가 그 성공경험을 본인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허공에 떠도는 말을 하기 쉽거든요. 예를 들어서 ‘열심히 하자, 믿고 기다릴게, 실패해도 괜찮아, 노력해보자, 더 고민해보자’. 이런건 (물론 필요하지만) 디렉팅이 아닙니다. 아무튼 성공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스테미컬한 성과취득 프로시저에 대한 감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그게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underrate하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기 쉬운 듯해서요, 예를 들어서, 내가 잠을 8시간이나 자서 그런건가, 주말 이틀 모두 놀아서 그런건가, 이런 탓을 하면 금방 지치고 지속적으로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성공경험에 대한 시스템이 있어서, 리젝 받을 이유를 하나 미리 검출해서 고쳤다면, 충분히 붙을 수도 있었던 논문일 수 있는 거죠. 거기에 들어 가는 시간이 불과 며칠 안 될 수도 있고요.
15. 지속가능한 성장이 제일 중요합니다. 석사 때 모든 상위권 목표 달성!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어요. 그 때 아무리 잘했다 한들 탑티어 저널을 2편썼든 3편썼든 어짜피 그게 중요한게 아니기도 하고요. 지속적으로 지적 부채를 빌리고, 지적 부채를 갚고, 다음 6개월 농사(논문)를 짓고, 점진적으로 목표를 올리고, 브랜딩도 공부해보는 등 linear span 하려고 노력해보고. 그리고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학계에 제기하고. 함께 풀고. 그리고 방금의 전 과정의 루틴의 수준을 조금 더 높여서 한 번 사이클을 더 돌리고. 그렇게 인류의 지적 수준이 조금씩 전진하는게 아닐까요.